어떤 차는 휘발유로, 어떤 차는 전기로 달립니다. 그런데 필요에 따라 두 가지 동력원을 자유롭게 오가며 최적의 효율을 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 몸 역시 이와 같은 스마트한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이를 바로 '대사 유연성(Metabolic Flexibility)'이라고 부릅니다. 대사 유연성이란 우리 몸이 섭취한 음식이나 체내에 저장된 에너지를 상황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연료로 선택해 사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면 몸은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반대로 오랜 공복 상태나 운동 중에는 몸에 축적된 지방을 꺼내와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에너지원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는 능력은 우리가 건강한 신체 활동을 유지하고 에너지 항상성을 지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몸의 하이브리드 엔진이 고장 난 상태, 즉 '대사 비유연성'은 생각보다 많은 현대인의 건강 문제를 야기하는 핵심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상황 따라 똑똑하게, 우리 몸의 에너지 전략
우리 몸의 대사 유연성은 간, 근육, 지방 조직이라는 세 명의 지휘자가 정교한 오케스트라처럼 협력하며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호르몬이라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지금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할지 결정하고 조율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에너지 전환 과정의 중심에는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식사를 통해 혈액 속 포도당 수치가 올라가면, 췌장에서는 인슐린이 분비됩니다. 인슐린은 각 세포에게 "지금은 포도당을 마음껏 사용하세요!"라는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지방을 태우는 과정은 잠시 멈추도록 지시합니다. 반대로,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인슐린 수치는 낮아지고 글루카곤과 같은 호르몬이 활성화됩니다. 이는 지방 조직에 저장된 지방산을 분해하여 온몸의 세포가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신호탄이 됩니다. 운동 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운 조깅을 할 때는 지방을 주로 사용해 에너지를 아끼고, 전력 질주와 같은 고강도 운동을 할 때는 즉각적인 힘을 내기 위해 포도당 사용 비율을 급격히 늘립니다. 이처럼 건강한 몸은 상황에 맞게 에너지원을 끊임없이 전환하며 최적의 효율을 유지합니다.
에너지 시스템의 고장, '대사 비유연성'이 부르는 질병들
하지만 지속적인 칼로리 과잉 섭취와 부족한 신체 활동은 우리 몸의 스마트한 에너지 시스템을 망가뜨립니다. 넘쳐나는 포도당과 지방산에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가 과부하에 걸리면, 결국 어느 연료도 제대로 태우지 못하는 '대사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사 비유연성(Metabolic Inflexibility)'입니다.
대사 비유연성은 다양한 질병의 문을 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슐린 저항성입니다. 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혈액 속에 포도당이 넘쳐나게 되고, 이는 결국 제2형 당뇨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쓰고 남은 에너지는 고스란히 지방으로 축적되어 비만을 유발하며, 심지어 간이나 근육 같은 장기에 지방이 쌓이는 '이소성지방'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고 심장 근육의 에너지 효율을 떨어뜨려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입니다. 나아가 일부 암세포는 비정상적인 대사 경로를 이용해 빠르게 성장하는데, 대사 비유연성은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여 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꺼져가는 엔진을 다시 켜는 법: 대사 유연성 회복 가이드
다행히도, 한번 떨어진 대사 유연성은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충분히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고장 난 에너지 시스템을 수리하고 다시 활성화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연 '규칙적인 운동'입니다. 걷기나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우리 몸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의 수와 기능을 향상시켜 지방 연소 능력을 극대화합니다. 근력 운동은 근육량을 늘려 더 많은 포도당을 저장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식단 조절'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칼로리 섭취를 적절히 제한하거나 간헐적 단식, 시간제한 식사 등을 통해 우리 몸이 일부러 저장된 지방을 꺼내 쓰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에너지원 전환 능력을 회복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영양소에 치우치기보다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균형 있게 섭취하여 우리 몸이 다양한 에너지원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필요한 경우 메트포르민과 같은 약물이 신체의 핵심 대사 경로를 활성화하여 대사 유연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이는 반드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대사 유연성은 우리 몸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습니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이라는 두 가지 핵심 열쇠를 통해 우리 몸의 스마트한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 수많은 만성 질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