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하던 양자컴퓨터는 흔히 거대한 기계와 영하의 온도를 유지하는 냉각 장치로 묘사됩니다. 실제로 양자 비트, 즉 큐비트의 섬세한 양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극저온 환경은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냉각 장벽’은 양자컴퓨터가 연구실을 벗어나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이 얼음장벽을 허물 수 있는 놀라운 연구들이 연이어 발표되며, ‘상온(room temperature)’에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 시대를 향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분자 우리에 갇힌 양자, 상온에서 잠재력을 깨우다
최근 가장 주목받은 성과 중 하나는 분자를 이용한 큐비트 기술의 발전입니다. 일본의 한 공동 연구팀은 2024년 초, 염료 분자를 ‘금속-유기 구조체(MOF)’라는 미세한 분자 구조물 안에 가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이 구조체는 분자 큐비트를 위한 일종의 안전가옥 역할을 합니다. 분자가 외부의 열이나 진동 때문에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을 막아, 섬세한 양자 상태가 외부 방해에도 쉽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전까지는 극저온 환경에서나 가능했던 다중 큐비트의 양자 간섭성을 상온에서 100나노초 이상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값비싼 냉각 장치 없이도 안정적인 양자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큽니다.
보석의 재탄생, 다이아몬드 큐비트의 비상
다이아몬드 내부의 미세한 결함(질소-결손 센터)을 큐비트로 활용하는 기술은 상온 양자컴퓨팅의 유력한 후보로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이 큐비트를 훨씬 더 정밀하게 제어하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정확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기술은 큐비트의 양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보호하면서 동시에 원하는 계산을 정확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프로토콜입니다. 그 결과, 상온 환경에서 양자 계산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게이트 충실도’가 94% 수준에서 무려 99.3%까지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양자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시간은 기존보다 약 30배 길어졌습니다. 이는 양자컴퓨터가 연산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는 데 필수적인 ‘오류정정’ 기능 구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중요한 성과입니다.
신소재의 혁신이 여는 새로운 가능성
다양한 신소재와 나노 기술 또한 상온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특정 반도체 물질과 나노 패턴으로 가공된 실리콘 기판을 결합해, 상온에서 빛(광자)과 전자의 양자 상태를 얽히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저전력, 저비용으로 양자 정보를 전송하는 양자 통신 부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미노페로센이라는 유기 분자와 그래핀을 혼합하여, 상온에서도 순철보다 100배 강한 자기 특성을 갖는 신소재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희귀한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도 강력한 양자 컴퓨팅 재료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 밖에도 흔히 사용되는 공업 재료인 실리콘 카바이드 내의 특정 결함을 큐비트로 활용하여 상온에서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도 시연되는 등, 소재의 혁신이 양자 기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큐비트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이를 구동하는 새로운 구조와 플랫폼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큐비트(초전도, 스핀, 이온 트랩 등)를 통합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상온 제어 플랫폼이 출시되기도 했으며, 이는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광섬유 고리 안에 단일 광자를 가두는 방식을 이용해 상온에서 작동하는 데스크톱 PC 크기의 소형 광자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양자컴퓨터가 더 이상 거대한 실험 장비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뜨거움’이 아닌 ‘차가움’ 속의 역발상
한편, 상온 기술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양자컴퓨터의 실용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목할 만한 시도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의 한 양자컴퓨팅 기업은 2026년 1월, 극저온 환경 내부에서 혁신을 이뤄냈습니다. 본래 큐비트 수가 늘어나면 이를 제어하는 배선도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이 배선들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열이 극저온 상태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이 기업은 바로 이 제어용 전자 장치를 양자 칩 바로 옆, 즉 극저온 환경 내부에 함께 통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수많은 큐비트를 훨씬 적은 수의 배선으로 제어할 수 있게 만들어, 대규모 양자컴퓨터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핵심 열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상온 양자컴퓨팅 기술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분자 설계부터 신소재, 새로운 아키텍처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극저온 냉각이라는 가장 큰 물리적, 비용적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면서, 양자컴퓨터가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바꾸는 날이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공상 과학을 현실로 만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참고 자료:
- Science Advances (2024), DOI: 10.1126/sciadv.adk5259
- Nature Photonics (2023), DOI: 10.1038/s41566-023-01323-2
- Advanced Materials (2023), DOI: 10.1002/adma.20230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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