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 즉 유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요? 이는 오랫동안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스위스의 한 연구팀이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박테리아의 유전체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고 합성하는 데 성공하며, 그 상상을 현실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져왔습니다. ‘콜로박터 에텐시스-2.0’이라 명명된 이 인공 유전체는 생명 창조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습니다.

생명의 운영체제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다
연구의 출발점은 자연에 흔히 존재하는 무해한 담수 박테리아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박테리아를 모델로 삼아, 그 유전 정보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대담한 도전에 나섰습니다. 목표는 단순히 몇 개의 유전자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단백질을 만드는 핵심적인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유전체의 구조를 최대한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낡고 복잡한 컴퓨터 운영체제(OS)를 버리고, 핵심 기능만 담아 가볍고 빠른 새로운 OS를 코딩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실제로 기존 유전체를 구성하는 80만 개가 넘는 DNA 문자 중 6분의 1 이상이 완전히 새로운 문자로 교체되었습니다. 이는 생명의 근본적인 코드를 재작성하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인공 DNA는 과연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컴퓨터가 설계하고 화학적으로 합성한 이 인공 유전체가 과연 생명체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했더라도, 자연의 생명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합성된 유전체의 조각들을 실제 박테리아에 넣어 그 기능을 테스트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새롭게 설계된 필수 유전자 중 약 81.5%가 자연 유전자와 완벽하게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DNA의 ‘철자’를 대대적으로 바꾸더라도 생명이 가진 본연의 ‘의미’는 충분히 유지될 수 있음을 증명한 획기적인 결과입니다. 유전 정보의 표현 방식에 상당한 유연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 것입니다.
오류 속에서 발견한 생명의 새로운 비밀
물론 모든 인공 유전자가 완벽하게 작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았던 나머지 유전자들은 실패가 아닌, 새로운 발견의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오류’들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기존 생명과학계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생명의 비밀들을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유전자는 기존에 그 기능이 잘못 알려져 있었음이 드러났고, 또 다른 유전자들은 단백질을 만드는 암호 속에 중요한 조절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인공 유전체를 처음부터 만들어보는 과정이 오히려 자연 생명체의 숨겨진 원리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 것입니다.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입니다.

미래를 여는 합성생물학의 거대한 도약
‘콜로박터 에텐시스-2.0’은 아직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완전한 인공 생명체는 아닙니다. 현재는 DNA 분자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기능성을 입증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합성생물학 분야의 거대한 도약이며, 미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힌 사건입니다.
이번 성공은 우리가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기능에 맞게 생명체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기술은 복잡한 의약품이나 백신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환경오염 없이 바이오 연료를 만들어내는 맞춤형 미생물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설계한 최초의 박테리아 유전체, 이는 생명을 이해하고 창조하려는 인류의 오랜 꿈을 향한 위대한 이정표로 기억될 것입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