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삶의 의미를 묻고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해왔던 종교. 문명의 새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나침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문하게 됩니다. 과연 종교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답을 줄 수 있을까요? 특히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상황에서 보여준 종교의 모습과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이러한 질문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종교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거대한 변화의 초입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굴레, 현재를 옭아매다

많은 종교는 수천 년 전 기록된 경전과 오랜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지혜와 통찰은 분명 존중받아야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절대 불변의 진리로 강요될 때 발생합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은 삶의 변화무쌍함에도 불구하고, 굳어버린 바위처럼 과거의 틀 안에 현재를 가두려 합니다 .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의 이해는 깊어지는데, 문자 그대로의 해석과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진리를 찾아 나서려는 개인의 여정을 가로막고, 이미 완성된 답을 제시하며 생각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 진정한 탐구는 때로 불편한 질문과 의심에서 시작되지만, 많은 종교는 이를 불신앙으로 치부하며 개인의 지성적 성장을 억누르기도 합니다 .

죄책감과 두려움, 통제의 도구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일부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통제의 기제로 삼기도 합니다. 원죄, 죄의식, 천국과 지옥, 내세의 보상과 처벌 등의 개념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어 순응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죄인’이라는 낙인은 개인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갉아먹습니다 .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나 본능을 죄악시하고 억압함으로써 불필요한 죄책감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 이러한 심리적 굴레는 개인이 자유롭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기반한 믿음은 진정한 영적 성장보다는 맹목적인 복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통합이 아닌 분열의 씨앗

역설적이게도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가 때로는 가장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배타적인 교리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 유일신 사상이나 선민사상은 다른 믿음을 가진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 힌두교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등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벽을 쌓는 행위는 인류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 진정한 영성은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사랑과 연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의 틀 안에 갇힐 때 오히려 편협함과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발견, 내면으로의 탐구

종교가 제시하는 외부의 신이나 경전에 의존하기보다, 이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진정한 답은 외부가 아닌 자기 안의 깊은 곳에 있다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명상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깨어있음(awareness)’의 상태에서 삶을 직접 경험하려는 노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이것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 있는 여정입니다. 삶의 매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기쁨과 슬픔, 사랑과 웃음을 충분히 경험하며 존재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 . 이것이야말로 어떤 교리나 의식보다 더 깊은 영적인 체험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도덕성 역시 외부에서 강요된 규율이 아니라, 깊은 내면의 자각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 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

급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전통적인 종교의 역할은 점점 더 축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무력감, 과학 기술의 발전, 개인주의의 확산 등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류는 이제 종교라는 오래된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내면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유산에 얽매이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영성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