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기업이 있습니다. 그저 부산 자갈치 근처의 시장 골목에 조용히 자리 잡은 오래된 어묵 가게 중 하나였던 그곳은, 지금은 ‘어묵의 명품’, ‘부산 여행 필수 코스’, ‘브랜드 식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바로 삼진어묵의 이야기입니다.

삼진어묵은 어떻게 수십 년간 제자리를 지키던 전통이 ‘전국민의 입맛’이 되는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설계한 리브랜딩 전략이 있었습니다.

삼진어묵

전통은 있지만, 브랜드는 없었다

1953년부터 어묵을 만들어온 삼진어묵은 분명 긴 역사를 지닌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전통’이라는 단어는 단지 오래됐다는 의미로만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시장 골목에서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지역 주민이나 단골뿐이었고, 브랜드 인지도는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3대 경영자가 경영을 맡으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는 단순히 어묵을 잘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를 제대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어묵을 ‘팔리는 상품’이 아닌 ‘사고 싶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지요.

‘어묵 베이커리’라는 신선한 상상력

삼진어묵의 리브랜딩 핵심은 ‘경험의 재설계’였습니다. 제품의 본질은 유지하되, 그것을 접하는 방식은 완전히 새롭게 바꾼 것입니다.

어묵을 진열해 파는 대신, 마치 제과점처럼 따뜻하게 구운 어묵을 오븐에서 바로 꺼내 쇼케이스에 담아내는 ‘어묵 베이커리’ 형식으로 매장을 재구성했습니다. 고객은 마치 빵을 고르듯 어묵을 고릅니다. 단순한 어묵이 ‘고급 간식’이 되고, ‘기념품’이 되었으며, ‘맛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진어묵이 ‘공장제 어묵’이라는 편견을 깨고, 프리미엄 푸드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전통을 포장하는 방식이 달라지다

삼진어묵은 브랜드 스토리도 매우 섬세하게 설계했습니다. 창립자의 사진과 어묵 제조 과정, 전통을 지키는 장인의 손길을 강조하며 소비자와의 감정적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포장 디자인 역시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삼진’이라는 브랜드 로고를 명확히 정립하고, 간결하고 감각적인 포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완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삼진어묵은 단순히 어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가볼 만한 공간’, ‘살 만한 선물’, ‘먹고 싶은 경험’으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만든 브랜드 충성도

브랜드는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삼진어묵은 자신의 브랜드가 가진 ‘오래된 이야기’를 단순한 연대기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와 맞닿게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전통’, ‘가족의 식탁을 지켜온 맛’, ‘변하지 않는 정직한 손맛’이라는 메시지는 다양한 고객층에게 진심을 전달했고, 고객들은 이를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럴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유하고 싶은 브랜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삼진어묵은 몸소 보여준 사례입니다.

제품의 혁신이 아닌 ‘브랜드의 혁신’

삼진어묵의 변화는 제품 자체의 혁신보다 ‘보여주는 방식’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꾼 데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동일한 어묵이지만, 누가 만들고 어떻게 보여주며 어떤 스토리와 경험을 입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 전략이 시장에서 제품보다 앞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삼진어묵은 고객의 감성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무명의 어묵을 국민 브랜드로 만든 것입니다.

브랜드는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삼진어묵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형의 자산을 다시 정의하고, 그것을 오늘날의 소비자 언어로 통역해냈습니다. ‘전통’이라는 가치가 자칫 ‘구식’으로 보이기 쉬운 시대에, 그 가치를 빛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성공해냈습니다.

무명의 브랜드가 국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여정은 단순히 ‘팔리는 기술’을 익힌 것이 아닙니다. 진심, 스토리, 디자인, 경험.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삼진어묵